오르내림이 아니라 조정된 가격이었다는 점
장바구니 물가를 볼 때마다 늘 드는 생각이 있다. 체감상 가격이 오른 것 같은데, 그 이유를 납득하기 어려운 품목이 꼭 하나씩 보인다는 점이다. 밀가루가 그런 품목 중 하나였던 셈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사조동아원, 대한제분, CJ제일제당 등 7개 제분사의 담합 행위를 적발하고 총 6710억45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담합 사건 사상 역대 최대 규모다. 이런 수치는 단순히 “많이 벌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시장의 가격 형성 자체가 흔들렸다는 뜻으로 읽어야 한다.
내가 이 사건을 유심히 보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밀가루는 빵, 라면, 국수, 과자 같은 일상적인 먹거리의 출발점이다. 겉으로는 조용히 지나가는 원재료지만, 실제로는 소비자 물가에 파급력이 큰 품목이다. 공정위가 이번 사건을 민생 침해 행위로 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시장의 기본 규칙이 깨지면 최종 소비자가 가장 늦게, 그러나 가장 크게 부담을 떠안는다.
시장점유율 87.7%가 뜻하는 것
이번에 제재를 받은 7개사는 국내 B2B 밀가루 판매시장에서 87.7%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2024년 매출액 기준이다. 사실 이 정도면 과점사업자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다. 소수 사업자가 시장을 사실상 좌우하는 구조에서는 경쟁보다 조율의 유혹이 커지기 마련이다. 공정위가 문제 삼은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특히 이들은 2006년에도 한 차례 담합으로 제재를 받은 전력이 있다. 그런데도 다시 같은 방식의 공동행위를 반복했다는 점에서 위법성은 더 무겁게 평가됐다. 정부가 물가 안정 차원에서 보조금을 지원한 시기에도 담합을 이어갔다고 하니, 단순한 가격 협의 수준으로 보기 어렵다. 시장이 어려울수록 각자가 버티기보다 함께 움직이는 쪽을 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6년 동안 이어진 합의, 24차례의 실행
공정위 조사 결과 담합은 2019년 11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약 6년에 걸쳐 이뤄졌다. 대형 수요처를 대상으로 한 가격·물량 담합 19차례, 중소형 수요처와 대리점 등 전 거래처를 대상으로 한 가격 담합 5차례, 합계 24차례에 걸쳐 실행됐다. 한두 번의 일탈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구조화된 행위였다는 점이 핵심이다.
여기에 55회에 달하는 회합도 있었다. 대표자급 회합에서 큰 틀을 맞추고, 실무자급 회합에서 세부 내용을 다듬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이런 흐름은 담합이 우연한 접촉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관리됐음을 보여준다. 기업의 의사결정이 얼마나 촘촘하게 연결돼 있었는지 짐작되는 대목이다.
공정위는 특히 원맥 시세가 오를 때는 인상폭과 시기를 맞추고, 반대로 하락기에는 내림폭을 늦췄다고 봤다. 원재료가 사실상 전량 수입에 의존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원가 변동을 가격에 반영하는 것 자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문제는 그 반영의 속도와 방향을 경쟁이 아니라 합의로 정했다는 데 있다. 시장원리가 작동했다면 각 사가 제각기 반응했을 텐데, 실제로는 움직임이 비슷하게 맞물렸다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다.
가격은 왜 그렇게 빠르게 올랐나
공정위에 따르면 담합이 시작된 2019년 12월 대비 2022년 9월 밀가루 판매가격은 제분사별로 약 38%에서 최대 74%까지 상승했다. 숫자만 보면 꽤 큰 폭이다. 물론 원맥 가격, 환율, 국제 정세 같은 외부 요인이 전혀 없었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동일 업종의 여러 회사가 비슷한 방향으로, 비슷한 속도로 움직였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것은 시장의 개별 판단이라기보다 공동행위의 결과로 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최소 상승폭 ■■■■■■■■■■■■■ 38%
최대 상승폭 ■■■■■■■■■■■■■■■■■■■■■■■■■■■■ 74%
이 수치가 의미하는 바는 단순한 가격 상승이 아니다. 밀가루를 원재료로 쓰는 제빵, 제과, 라면 업계는 원가 부담을 피하기 어렵다. 결국 그 부담은 최종 가격으로 옮겨간다. 나는 이런 구조를 볼 때마다, 담합이 얼마나 조용하게 소비자 지갑을 건드리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이에 비용이 쌓이고, 어느 순간 마트 진열대에서 체감하게 되는 방식이다.
역대 최대 과징금과 가격 재결정 명령의 의미
공정위는 7개사에 총 6710억45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관련 매출액은 약 5조6900억원으로 산정됐다. 이번 과징금은 이전까지 최대였던 2010년 LPG 공급회사 담합 사건의 6689억원을 넘어섰다. 숫자만 놓고 보면 공정위가 “이 정도면 충분히 강한 제재”라고 판단한 셈이다.
주목할 부분은 과징금만이 아니다. 공정위는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도 부과했다. 담합으로 왜곡된 가격을 다시 정상 수준으로 되돌리라는 취지다. 2006년 사건 이후 20년 만에 다시 꺼낸 조치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과거에는 가격 재결정 명령 이후 약 5% 가격 인하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이번에도 같은 효과가 나타날지는 지켜볼 문제지만, 공정위가 가격 구조 자체를 손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은 분명하다.
| 구분 | 내용 |
|---|---|
| 담합 기간 | 2019년 11월 ~ 2025년 10월 |
| 담합 횟수 | 총 24차례 |
| 회합 횟수 | 총 55회 |
| 과징금 총액 | 6710억4500만원 |
| 시장점유율 | 87.7% |
왜 이번 사건이 더 무겁게 읽히는가
공정위는 이번 사건을 이례적으로 빠르게 처리했다. 조사 착수 후 약 7개월 만에 제재를 내렸고, 전원회의 심의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사건 내용을 공개 브리핑한 것도 처음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민생과 연결된 사안이라는 판단이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남동일 부위원장도 국민 생활과 밀접한 식료품의 가격 담합에 대한 감시를 더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시장점유율 90%에 이르는 제분사들이 약 6년에 걸쳐 은밀하게 실행한 담합을 적발해 제재했다는 데 의의가 있겠습니다.”
이 발언은 이번 사건의 핵심을 꽤 명확하게 짚는다. 담합은 단순히 기업끼리 이익을 나눈 문제가 아니다. 경쟁이 사라진 시장에서 가격 신호가 왜곡되고, 그 부담이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구조다. 밀가루는 눈에 띄는 사치재가 아니라 생활필수재에 가깝다. 그래서 더 민감하다. 내가 이 사안을 보며 느끼는 불편함도 그 때문이다. 생활과 가까운 상품일수록 가격 조작의 파장은 더 넓고 깊다.
공정위는 앞으로도 밀가루처럼 국민 생활과 밀접한 품목의 담합에 대해 감시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조치가 일회성 경고로 끝날지, 아니면 업계 전반의 가격 결정 방식을 바꾸는 계기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하나다.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격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가격이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졌는가 하는 점이다. 그 과정이 투명하지 않다면, 숫자가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신뢰는 오래가지 않는다.
